지난 2013년 발생한 ‘동양 사태’는 금융권 역대 최악의 불완전 판매 사건으로 꼽힌다.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사기성 기업어음(CP)을 계열사인 옛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이 판매했고, 공식적으로 배상까지 받은 피해자는 1만 2,000명에 달했다.
당시 불완전판매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의 판매 녹취를 일일이 들어야 했다. 투입된 검사 인력은 300명이 넘었다. 서면이 아니라 유선상 금융상품을 판매할 경우 통화 내용이 녹음되는데, 수백명이 매달려 수만건의 녹음 파일을 들어야 했다는 의미다.
1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은 ‘귀에서 피나도록’ 녹음 파일을 들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금융권은 인공지능(AI) 판매 절차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음성 파일을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도 범용시장으로 퍼지고 있다.
불완전판매처럼 법적으로 분쟁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금융권만이 아니라 전 업권에서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메타버스나 AI를 통한 디지털 전환에도 음성인식은 필수 기술로 분류된다.
음성인식 기술을 갖춘 국내 중소형사들은 마침내 봄날을 맞았다. 국내 1호 인공지능 코스닥 상장 기업인 셀바스AI는 지난 1999년 설립됐고, 2009년 상장했다. 과거 인공지능이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던 시절부터 22년간 연구개발을 진행했고, 드디어 작년에는 음성인식 분야의 고성장을 발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린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2005년 창립한 엘솔루는 실시간 자동통역기를 개발한 곳이다. AI번역과 AI음성인식 기술이 강점인데, 음성인식 매출의 경우 연평균 130%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권을 포함해 IT기업과 정부부처까지 콜센터를 AI컨택센터로 전환하는 추세인데, 여기에 엘솔루의 음성인식 기술이 널리 적용됐기 때문이다.
시대를 잘 탄 스타트업도 있다. 지난 2018년 설립된 리턴제로는 ‘비토’라는 음성인식 앱을 지난해 4월 정식 출시했는데, 통화 녹음 내용을 문자로 바꿔 채팅처럼 보여주는 서비스다. 지난해말 기준 처리한 통화수는 9,800만건이 넘고,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음성인식은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형 IT 공룡들이 이미 내부적으로 갖추고 있는 기술이다. 그럼에도 국내 중소형사의 고성장하는 건 대형사들이 주로 범용시장보다는 자체 서비스에 탑재하기 위한 기술 활용에 아직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성인식률 기술이 상향평준화되고, 수요 자체가 업권을 막론하고 넓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중소형사들의 발판으로 꼽힌다.
음성인식 회사 관계자는 “음성인식률이 과거보다는 대체로 훨씬 높아졌고, 이제는 범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며 “음성인식을 활용하려는 업종이 대폭 늘어났고, 특히 정부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앞으로도 전망이 밝다”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 이수현 기자 shlee@mtn.co.kr] 목소리가 여는 새 시대…음성인식 시장 20년 만의 ‘봄’